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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3 #005 다이버 조하나를 만나다

최종 수정일: 2021년 2월 17일



#.


왜 조하나님을 찾아갔을까? 작년 12월 초, 다이버 조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태국 꼬따오로 향했던 여정을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떤 마음이 필자를 그곳으로 이끌었을까? FOUND, ARENA의 에디터였던 그녀의 인터뷰들이 필자에게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잡지계에서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아가던 그녀가 다이빙을 하겠다며 꼬따오로 향한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다. 조하나님의 삶에 큰 변화를 만들어낸 다이빙의 매력이 무엇인지 듣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쉬이 고개를 끄덕이기 어려웠다. 단지 그것뿐이었을까?


꼬따오의 출렁이는 배 위에서, 필자는 다이빙 장비를 몸에 두르는 그녀를 보았다. 조금은 거칠어 보이는 바다에 망설임 없이 뛰어드는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 누군가에게 다이빙을 가르치고 그를 바다로 안내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가 어제도, 내일도, 내일 모레도 겪을 일상의 한 단편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몸을 때리는 바람과 쏟아지는 바닷물을 맞으며 생각했다. 요동치는 배 위에서 죽을 것 같은 배 멀미와 싸우면서도 계속 같은 생각이 머리 안을 맴돌았다.


이 모든 것들을 눈에, 마음에, 카메라에 담아야겠다고.


때때로 ‘물어보고 싶다.’는 감정보다 ‘보고 싶다.’는 감정이 더 클 때가 있다. 그 사람의 일상을 눈에 담고, 그 세계를 마음에 담고 싶을 때가 있다. 조하나님이 서있는 세계가 궁금했다. 그를 오감으로 느끼고 싶었다. 그것이 필자가 떠난 이유였다.


2017년 12월, 태국 꼬따오에서 다이빙을 하는 조하나님을 만났다.


[사진 촬영 및 제공 = 오픈북]


#. 에디터 조하나


조하나님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들어보고 싶어요. 다이버 생활과 에디터 생활 이전, 조하나님의 20살은 어땠나요?


- 고등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어요. 대학교 때도요. 일을 안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호프집 서빙도 하고, 바에서 바텐더 일들도 하고. 바텐더 일을 할 때는 전문적으로 해보겠다고 조주사 자격증을 따기도 했어요. 한창 홍대 클럽들이 클럽데이로 붐이 일던 시절에 주말마다 출근 도장을 찍던 클럽 사무실 홍보팀에서 일도 했고요. 지금 생각해보니 쓸 데 없는 일을 좀 많이 했네요. (웃음)


클럽 일도 하고 쇼핑몰도 해보고, 늘 재미있는 일에 시간을 썼어요. ‘이 시간을 잘 써서 나중에 돌려받아야겠다.’는 생각도 없었어요. 지갑에 돈이 끊이지 않는 것 마냥 무작정 시간을 썼죠. (웃음)


그러다가 에디터 일을 선택하신 건 어떤 계기였던 건가요?


- 20대 때 그렇게 시간을 막 쓰다가 ‘미래를 제대로 생각해봐야겠다,’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어린 나이에 쇼핑몰을 하면 돈도 많이 들어오거든요, 신나고 차도 끌고 다니고 했죠. 그러다가 20대 후반 쯤에 ‘아 이렇게 살면 앞으로 재미없는 인생이 되겠다.’ 싶었어요. 재미로 찾던 일들은 다 흥미가 떨어지니까 오래 가질 못하는 거예요 내가 뭘 하고 싶을까, 내가 뭘 하고 살아야 앞으로 행복할까. 그런 고민을 하게 되더라고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데,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는 거예요. 미치고 팔짱 뛸 노릇이죠. (웃음) 그래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6개월 정도 집에 있었어요. 아무 것도 안하고. 그동안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시끌벅적하게 살았다면 이제는 정말 나를 생각해보고 싶었어요. 그 정체기가 저한테는 정말 고마운 시기였어요. 그러다가 떠오른 게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걸 글로 옮겼을 때, 그 글을 다른 사람들이 보면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겠다. 내가 책을 읽고 영감을 받는 것처럼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다리 일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까 잡지 에디터더라고요.


30살에 시작한 에디터 생활은 어땠나요? 첫 에디터 생활은 FOUND에서 시작했던 걸로 알고 있어요.


- 한국에서 나이 서른에 잡지 에디터를 하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일반적으로는 대학교 학생 때 어시스턴트부터 시작해요. 그렇게 경험을 쌓고 대학을 졸업했을 때 ‘운 좋게’ 정 기자 자리가 나면 그 자리에 들어가게 되죠. 업계 자체가 이직률이 굉장히 낮은 곳이고 폐쇄적이어서 공채도 거의 가능성이 없어요. 무엇보다도 제가 들어가게 되면 저보다 경력이 많은 선배들이 저보다 나이가 적은 상황이 되더라고요. 다들 그걸 걱정하셨죠.


그래서 전국에 있는 모든 잡지사의 편집장님들 리스트를 뽑아서 제 이력서를 다 보냈어요. 그냥 들이댔죠. (웃음) 그러다가 연락이 온 곳이 FOUND였어요. 그 곳 편집장님이 굉장히 난 분이셨죠. (웃음) 제가 ‘저 나이도 많고 이제 시작하려고 하는데 괜찮은가요?’라고 걱정하니까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 네가 정말 하고 싶으면 선배가 너보다 나이가 적어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거다.’라고 하면서 저를 받아주셨어요.


Found에서의 일은 기대했던 일과 비슷했나요? 아니면 실제 에디터 일은 생각과 많이 달랐나요?


- 저는 일단 비교대상이 없었어요. 그땐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랐으니까요. 당시에는 편집장님이랑 저, 다른 기자 두 분이 전부였기 때문에 모든 에디터들이 기획부터 취재, 제작, 교정, 인쇄소가서 책 나오는 거 보는 것까지 다했거든요. 그걸 다 부딪히면서 배웠죠. 섭외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인터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렇게 부딪히면서 배운 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기회를 주신 FOUND 편집장님은 정말 저에게 은혜로운 분이셨네요. (웃음)


그 때의 생활은 즐거웠나요?


- 재미있었어요. 인력이나 시간, 예산이 여유로운 편은 아니었지만 애초에 잡지 일을 통해서 큰돈을 벌자는 마음도 없었고 좋아하고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을 우리가 우리 방식대로 소개해보자고 시작한 일이었으니까요. 저희는 아이돌이나 유명한 셀럽들을 만나기보다는 인디 씬의 아티스트들을 만나려고 많이 노력했었어요. 덕분에 독자 분들도 마이너한 성향이 많이 강했죠.


FOUND에서 즐거우셨던 경험들을 조금만 더 나눠 주실 수 있을까요?


- 김경 선배님이라는 에디터님이 계세요. 굉장히 트랜디하면서 인문학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는 에디터님이세요. 대학교 때부터 <뷰티플몬스터>, <싸이는 싸이고 김훈은 김훈이다> 등등을 읽으면서 막연하게 동경하던 인물이었어요. FOUND 시절에 그 분이 저한테 칼럼 청탁을 하셨던 적이 있어요. 그 땐 정말 좋았죠. (웃음) 그리고 지금은 개인 활동을 하고 계시지만 예전에 ARENA 피처 에디터이셨던 이우성 선배라는 분이 있었는데 제가 FOUND에 있을 때 ‘아레나에 자리가 있는데 올 생각 없냐’고 연락을 하셨어요, 그 때는 ‘네?’라고 했죠.(웃음) 에디터가 에디터를 뽑는 게 뭔가 이상했어요. (웃음) 그 뒤에 아레나 편집장님이 면접을 보고 싶다고 연락을 했었어요.


사실 여쭤보고 싶었어요. FOUND에서 몇 년 일하시다가 ARENA로 옮기셨잖아요. FOUND에서 재미있게 일하셨다고 했는데, 특별히 옮기신 이유가 있었나요?


- 3년 정도 하니까 더 이상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 없었어요. 매달 만나고 싶은 사람을 기획하고 발굴해야 하는데 한국의 인디씬이 생각보다 좁아요. 새로운 사람들이 계속 나오면 좋은데 그 때는 그럴 때는 아니었어요. 그리고 인디 아티스트들을 만나면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인디씬이 힘들 수밖에 없는 상황, ‘우리는 이렇게 음악을 잘하고 공연도 잘하는데 왜 알려지지 못할까?’ 그런 얘기들을 듣다보니 ‘그럼 내가 조금 더 인지도가 있는 곳으로 가서 이 친구들을 만나면, 100명이 볼 수 있는 걸 1000명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스스로의 한계점도 있었어요. 늘 배우기보다는 부딪혀가면서 일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하기도 했어요.


[사진 제공 = 조하나님]


#. 다이빙


처음 다이빙을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 ARENA에 입사한 첫 해에 출장 갔을 때요. 피쳐 에디터들은 1년에 한두 번 정도, 시즌 전에 해외에 있는 리조트들에 초대를 받아요. 며칠 동안 리조트에 묶게 하고 기사를 쓰게 해주죠. 한 번은 일본의 이시가키 섬에 갔는데 기자들한테 액티비티를 주더라고요. 하나는 산악 자전거였고 다른 하나는 스쿠버 다이빙이었어요. 다들 물을 무서워해서 산악 자전거를 골랐는데 저는 멋모르고 스쿠버 다이빙하겠다고 했어요. 그 때 해보고 좋았던 게 인연이 되었던 것 같아요.


어떤 게 좋으셨어요?


-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는 거. 바깥세상 소리가 안 들려서요.


그게 왜 좋은 걸까요? 에디터들이 항상 많은 소리들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해서 그런 건가요?


- 지쳤었던 것 같아요. 패션지에 있으면 계속 트랜드를 캐치해야 하고 빨라야 해요. 근데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제가 느끼기엔 이 트랜드를 브랜드들이 만드는 것 같더라고요. 브랜드들은 소비자들을 자극하기 위해 계속해서 새로운 걸 만들잖아요. 소비자들이 새로운 걸 구매해서 쓰게 해야만 자본주의 시장이 굴러가니까요.


기자들이 가지고 있는 자부심은 상당해요. 트랜드의 선방에 서 있고, 사람들에게 그런 걸 소개시켜준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 근데 저는 제가 브랜드에 끌려 다니는 느낌이었어요. 그런 트랜드나 문화의 일차적 생산자가 아닌 상황에서 브랜드들이 만든 트랜드를 소개해주는 것에 지쳤던 것 같아요.


예전에 에디터님의 블로그를 통해서 왜 에디터 업계에서 나오셨는지 여쭤봤었어요. 그 때 말해주시길 ‘그곳에서 이루고자 하는 것을 다 이루어서’라고 말해주시기도 했어요.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었을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 저는 대단한 거 없었고요. 제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서 제가 느낀 대로 솔직하게 인터뷰 기사를 써서 그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거였어요. 사실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목적이 아니었고 제 만족이었어요. 제가 좋으면 좋은 인터뷰였어요. 아티스트들이 인터뷰를 보고 ‘아 그 인터뷰 너무 좋았다.’는 피드백을 줬을 대 보람을 느끼기도 했고요.


(잠시 고민) 시간이 지나서 ‘더 이상 만나고 싶은 사람이 없다.’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게 노엘 갤러거(Noel Gallagher) 인터뷰였어요. 제가 항상 노래를 부르고 다녔던 게 ’노엘 겔러거 만나면 그게 내 일의 끝이 될 거야.‘ 라고 했거든요. 어느 순간 제가 만나고 있더라고요. 페스티벌할 때 뒤에 있는 컨테이너 박스에서 인터뷰를 잠깐 했는데요. (그런 사람들은 인터뷰 시간을 오래 주지도 않아요 (웃음)) 그 분위기, 상황, 서로 나누었던 이야기, 그가 했던 제스처 그런 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에디터 생활을 하다가 아예 다이빙에 전념해야겠다고 결정을 내린 순간이 있으신가요?


- 사실 인생에 순간이라는 건 없어요. 솔직히 조금은 웃긴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웃음) 어떤 사람의 인생이 어느 순간에 갑자기 딱 방향을 트는 게 아니거든요. 방향을 잡아도 계속해서 방향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도 다이빙을 하겠다고 해서 다이빙을 바로 한 건 아니었어요. 출장 가서 경험한 첫 다이빙 때가 ARENA에서의 첫 번째 해였고요. 그 후에도 몇 년 동안 ARENA에 있었어요. 하지만 계속 마음에 두고 있었죠. ‘언젠가 나는 다이빙하면서 살 거야.’라고 마음에 두고 있다 보니까 다이빙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사진 제공 = 조하나님]


그럼 왜 꼬따오에 오셨었나요? 처음 다이빙을 했던 일본도 있었을 텐데요.


- 꼬따오는 다이빙의 성지라고도 불리고 동시에 무덤이라고도 불려요. 그만큼 다이버들이 많아요. 현지인들보다도 외국에서 온 다이버들이 많고 그래서 문화도 태국 문화라기보다는 믹스 컬쳐에 가까워요. 그런 커뮤니티의 힘을 느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 작은 섬에 사는 사람들 중에 70~80%가 다이버라는 사실이 참 재미있잖아요.


이 곳에서 온지 얼마나 되셨나요? 제가 알기로는 2015년부터 있으셨던 걸로 알고 있는데.


- 저도 몰라요. 뭐 그 때쯤 되었겠죠. (웃음)


대화하면서 느낀 거지만 날짜 세는 것에 참 무심하시네요.


- 그거 세서 뭐하겠어요. (웃음) 2015년에 내가 언제 여길 왔고, 언제 뭘 하고 (웃음) 저는 이렇게 인터뷰할 상황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요.


저는 날짜에 민감한 사람이라서요. 언제 무엇을 했는가를 늘 기억하려고 하는 사람이라.


- 나중에는 또 어떻게 될지 몰라요 (웃음) 저도 그런 때가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그냥 하루하루에 몰두하면서 살아요. 어제도 안보고 내일도 안 보고. 오히려 한국에서 살 때는 10년 후 걱정하고, 10년 전 반성하고 이렇게 살았지만. 그거 하기 싫어서 여기 온 거니까요.


처음에 한 달 정도만 다이빙을 하려고 이곳에 오셨다가 세 달 이상 머물게 되었고, 그 뒤에 결국 쭉 다이빙을 하시게 되었다고 들었어요. 사실 저였다면 다이빙이 그렇게 매력적으로 오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해요. 무언가 단조로워 보이기도 하거든요. 다이빙의 매력이 대체 뭘까요?


- 똑같은 거죠. 순목씨가 3년 동안 사람을 만나고 다니셨잖아요. 누군가에게는 ‘어떻게 그렇게 하세요? 안 지루하세요?’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그런데 본인은 좋아서 계속 이렇게 다니고 있으시죠. 저도 똑같아요. 저는 다이빙이 좋아서 그냥 다이빙을 계속하고 사는 거예요. 그 이유를 굳이 더 설명하려고 한다면... 사실 잘 모르겠어요. (웃음)


저 같은 경우에는 세상에 많이 지쳐있었어요. 오늘은 막 이 이슈에 사람들이 열광했다가 다른 날에는 다른 걸로 옮겨갔다가 또 다른 날이 되면 마녀 사냥하듯이 SNS로 누구를 막 때리다가 그 다음날이 되면 다른 사람으로 옮겨갔다가. 그런 것들을 기자 일을 하게 되면 굉장히 많이 보게 돼요. 그리고 저는 아티스트들을 직접적으로 만나는 일을 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얼마나 시달리고 얼마나 힘든지 알았고요. 그런 것에 많이 지쳐있었던 상태에서 바다 속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사람이 아무것도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굉장히 겸손해져요.


지금은 강사를 하고 있으세요.


- 다이빙을 좋아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오래오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이빙으로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서는 강사를 할 수 밖에 없었죠. 근데 강사 일도 또 안 맞으면 못하거든요. 다행히도 그 역시 결국은 다이빙이라 좋았어요. 파도가 높고 시야가 좋지 않아도 저는 바다 속에 있으면 좋아요.


하지만 그냥 다이빙을 하는 것과 강사 일을 하는 건 다를 것 같기도 해요.


- (잠시 고민) 다른 것 같지는 않아요. 저 혼자 다이빙을 하든 누구를 가르치든 안전하게 다이빙하고 즐겁게 다이빙 하는 거니까요.


[사진 제공 = 조하나님]


다이빙을 할 때 언제가 가장 좋으셨어요?


- 좋은 사람들과 다이빙할 때 좋죠. 언제라고 딱 말하기는 어려워요. 그냥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저는 이 일을 제가 선택했고 제가 여기에서 제 힘으로 기회를 얻었어요. 열심히 했고, 좋아했고, 또 열심히 하니까 이곳 친구들이 기회를 줘서 서양팀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됐죠. 이런 것들이 다 제가 하나하나 이룬 것들이잖아요. 그런 것에서 오는 만족감이 크죠. 자존감도 크고요.


제 인생에서는 사실 많은 변화잖아요. 저는 도시에서 살았고, 화려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화려한 일을 했죠. 근데 여기서는 화장도 안하고 매일 반바지에 안에 수영복 입고 살아요. 삶의 가치관이 많이 달라졌어요. 어쩌면 내가 최고의 순간을 기억하고 간직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내가 척박한 삶을 살고 있다는 얘기일 수도 있어요. 저 역시 좋은 날이 있고 싫은 날이 있지만 평균적으로 보면 훨씬 높은 질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가치관이 바뀌었다면 그 바뀐 가치관은 정확히 어떤 건가요?


- 가치관이 바뀌었다기보다는 저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는데 그걸 제가 모르고 살았던 것뿐인 것 같아요. 저는 이런 삶에 더 만족하고 더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런 환경에서 살아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그동안 몰랐던 거죠. 지금 이렇게 살게 된 게 다행인 거죠. 저는 오늘 행복하면 돼요. 내일도 필요 없고, 어제도 필요 없어요.


[사진 촬영 및 제공 = 오픈북]


예전에 김창완 선생님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 때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이 ‘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희생하지 말라.’는 것이었어요. 저도 내일 더 좋은 집에서 살기 위해, 내일 더 좋은 차를 끌기 위해 오늘 스트레스 받고 힘들어 했었어요. 내일은 나아질 거라 믿으면서 살고, 내일은 그 다음날을 위해 살았죠.


김창완 선생님의 말을 들은 후에는 항상 이야기해요.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 말라고. 오늘을 네가 즐겁게 알차게 보내면 내일도 행복할 거라고. 오늘 잘 살면 열심히 살 수 밖에 없잖아요. 그럼 내일도 잘 살 수밖에 없거든요. 이걸 반대로 생각해서 내일 잘 살아야겠다고 오늘 하기 싫은 일들을 하면 내일도 안 될 수밖에 없어요. 물론 이게 맞다 틀리다의 문제는 아니에요. 저는 그게 저한테 맞아서 받아들인 거죠.


그럼 미래에 대한 불안은 없으세요?


- 어떻게 하면 인간이 미래에 대한 불안 없이 살 수 있을까요? 이건희는 내일에 대한 불안이 없을까요? 모든 사람이 내일에 대한 불안은 다 있을 걸요.


모든 사람들이 다 보험을 들고 살잖아요.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 대비하기 위해서 살죠. 저는 제가 어떤 사람인가 따져봤을 때 미래를 준비하고 대비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늘 안정적인 토대가 중요한 사람이죠. 그래서 조하나님처럼 오늘에 집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늘 새롭게, 신기하게 다가와요.


- 생각해보니 제가 보험이 없네요.(웃음) 사실 저는 오히려 부러워요. 제가 존경하는 분들은 한 직장을 오래 다니신 분들이에요. 신입사원부터 시작해서 대리, 과장, 임원진까지 하고 정년퇴임하시는 분들이요. 평생을 한 가지 일에 바치신 분들. 그런 분들을 존경해요. 저는 그렇게 못 살거든요.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한 적이 없어서.


제가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서 미래를 아예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니겠죠. 다만 오늘에 집중했을 때 생기는 영향력을 믿는 거예요. 재미있게, 즐겁게 했을 때 생기는 여러 기회가 있을 거라는 거예요.


[사진 제공 = 조하나님]


10년 후에는 어떻게 살고 있으실 것 같아요? 지금 질문하신 것만 보자면 조하나님께 그렇게 중요한 질문은 아닌 것 같지만 (웃음)


- (웃음) 10년 후에...또 뭔가 이상한 거 하고 있지 않을까요? (웃음) 지구 반대편으로 간다거나 스카이다이빙을 한다거나, 서핑을 한다거나. 저는 섬에 사는 걸 좋아해서 아마 10년 후에도 섬에서 뭔가를 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다이빙을 10년 동안 해야지.’ 하는 결심은 이제 안 해요. 이전의 삶을 통해서 배운 게 있다면, 그렇게 목표를 세우는 게 저에겐 의미가 없다는 거였어요. 그냥 제 하루하루를 차곡차곡 쌓아만 나가면 10년 후에는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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