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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02 #012 웹툰<닥터 프로스트>의 이종범 작가를 만나다


[사진 촬영 및 제공 = 오픈북]


어떤 예술 작품은 우리의 삶 깊숙한 곳에 들어온다. 신선한 자극이었던, 또는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작품은 어느 순간 일상의 한 켠에 자리 잡는다. 퇴근 길에 듣는 음악, 자기 전 보는 웹툰이 아마 그런 종류의 예술 작품일 것이다.

웹툰 <닥터 프로스트>가 그런 작품이었다. 우연히 첫 화를 보았던 게 2011년. 정신을 차려보니 5년이 흘렀고, 주인공의 이름 ‘백남봉’은 이제 친숙한 이름이 되었다. 어느새 주인공의 아픔은 안타까움을 느끼게 했고, 캐릭터의 고군분투에 응원의 한마디를 전하게 됐다.

그래서 <닥터 프로스트> 이종범 작가와의 만남은 필자를 한없이 설레게 했다. 5년간 일상에 한 부분을 책임져 주었던 작품의 창작자를 만난다는 건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조금 쌀쌀했던 4월 초순,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은 채 <닥터 프로스트 시즌3> 연재를 마무리한 이종범 작가를 만났다.

#. 5년 동안의 여정 <닥터 프로스트>

날짜를 세어 보니 시즌3가 마무리되고 대략 2~3주 정도가 흘렀어요. 기분이 어떠세요?

- 벌써 그렇게 되었나요. (웃음) 후유증이 아직도 있어요. 연재를 한다는 건 마라톤을 하는 거랑 비슷한 것 같아요. 마음은 제대한 군인인데 몸은 마라톤을 뛴 직후라 지금은 요양을 하고 있어요. 연재가 끝나고 완결의 여운을 만끽하는 게 웹툰 작가들의 소소한 행복인데, 저는 바로 다른 일을 시작하게 되어버려서 조금 경황이 없어요.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시즌3의 이야기만 놓고 보자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어떻게든 했다는 충실감은 있어요. 그게 독자 분들에게 어떻게 전달되었는지는 시간이 조금 더 지나야 하겠지만 스스로가 느끼는 충족감은 충분히 있고, 그런 걸 음미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시즌 3 연재는 어땠나요? 이전 시즌과는 다른, 특별한 애착 같은 게 있나요?

- 각 이야기마다 다른 애착이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최근에 끝냈기 때문에 더 애착이 가기는 해요. 작가들이 전체 이야기를 쓸 때는 대부분 특정 주제나 내용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쓰는 경우가 많은데요. 저에게는 시즌 1,2 작업도 참 즐거웠고 재미있었지만 시즌 3의 이야기는 꼭 해보고 싶었던 이야기였기 때문에 조금 더 남다른 게 있어요.

시즌 3에서 담고 싶었던 그 이야기는 어떤 거였나요? 후기에서도 말씀해주신 걸로 알고 있기는 하지만, 작가님을 통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보고 싶네요.

- ‘자기 자신을 만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죠. ‘내가 나를 제대로 안아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자기 자신을 학대하면서 살아가는데요. 자신을 학대하기 보다는 안아주는 것이 한 인간의 성장 과정에 있어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그 부분을 적나라하게 그려서 조금은 유치한 감은 있지만,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해요.

시즌3에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세월호를 모티브로 한 에피소드가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노란 리본의 그림이 한 컷 나오기는 하지만 세월호라는 단어를 언급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프로스트의 어린 시절 경험을 재체험한다는 설정이기 때문에 정확한 시기로 따져보면 서해 페리호 사건 희생자의 이야기이기도 해요. 그렇게 해석하는 게 ‘이런 종류의 피해자 개개인은 반복되어 나타난다. 이 체제가 바뀌지 않는 한 반복되어 나타날 수밖에 없다.’라는 테마에 더 맞는 설정이기도 했고요.

세월호 에피소드는 중간에 갈아엎으셨잖아요. 이전에 그리던 내용들을 폐기하고 새로 이야기를 다시 짜셨어요. 작가 입장에서는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솔직히 그 마음이 상상이 잘 안 가네요. (웃음)

- 마라톤 뛰다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느낌이었어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던 일이었습니다. (웃음)

대단하시네요.

- 피해자 아이들을 직접 만나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만약에 만나지 않고 그렸다면 다 그리고 나중에 후회했을 것 같아요. 괴로웠지만 덕분에 후회를 하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작가님이 피해자 학생 분들을 직접 찾아가셨던 건가요?

- 사실 제가 먼저 만날 엄두는 안 났어요. 수많은 취재를 다녔지만 그 일만큼은 엄두가 나지 않더라고요. 1화가 끝나고 단원고 3학년 친구들이 ‘잘 보고 있다,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보내왔어요. 저에게는 매우 큰 기회였죠. 만화 이야기는 일부러 안 했어요. 그냥 맛있는 거 사주고 같이 놀았어요. 그런 와중에 아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그것들을 들으면서 제가 구상하던 이야기가 다시 형성됐죠.


[사진 출처 = 네이버책]


시즌3는 프로스트 교수라는 한 개인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요. 그래서 ‘프로스트’의 시작부터 이야기를 한번 나눠보고 싶네요.냉철한, 공감 능력이 없는 심리학자’라는 컨셉은 어디서 시작된 건가요?

- 작가마다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이 다 있는데요. 저의 경우에는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엔딩으로 먼저 그려져야 해요. 엔딩 나오지 않으면 이야기를 쓰지 못하는 편이에요. 그 엔딩이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이니까요. 닥터 프로스트의 엔딩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었어요. 그런 엔딩을 만들려면 시작이 어떠해야 할까 생각해봤는데요. 자기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자신을 이해하는 여정이 그려지겠더라고요. 그래서 나오게 된 설정이에요.

그런 결핍이나 모순된 설정에서 시작하는 걸 좋아하는 작가들이 상당히 많아요. 픽업 아티스트의 이야기인데 모태솔로라거나. 천상 가난뱅이가 로또에 맞아서 부자가 된 이야기라거나. 그런 이야기들이 왜 재미있나 고민해보면, 그 결핍을 채워가는 얘기 자체가 하나의 매력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도 그런 매력 때문에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쓴 듯하네요.

처음 작품을 시작하셨을 때 작가님의 입장에서 본 프로스트 교수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공감이 가는 인물이었나요?

- 솔직히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어요. ‘캐릭터를 잘 만들어서 내 캐릭터가 알아서 살아 움직였다.’고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제가 보기엔 그런 분들은 진짜 고수들이신 거예요. (웃음) 보통은 그렇게 되지 않아요. 만들어놓은 캐릭터, 저도 이해 안 가요. 그렇기 때문에 ‘얘, 왜 이러나. 친구였으면 진짜 상종도 안 했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죠. 이야기를 쓰는 작가의 입장에서도 그 인물을 이해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5년 정도 연재한 지금은 많이 이해가 되어서 참 안타깝고, 시즌 3때 주인공의 행동처럼 그냥 꼭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이해가 된다는 그 말씀이, 앞에서 말씀하신 ‘결핍을 채워나간다.’는 이야기와 이어지는 느낌이 드네요.

- 비슷한 맥락이라고 봐요. 비슷하잖아요. 정말 이해 안 되는 어떤 사람이랑 어떤 연이 닿아서 친구가 되었을 때, 이 사람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 자체도 하나의 스토리라고 보거든요. 닮아 있죠. 그런 면에서 저도 제 주인공을 알아가는 과정이었고 지금은 상당히 가까워진 상태인 것 같아요.

프로스트 교수를 하나의 음악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음악이 어울릴까요?

-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기 전에 각 악기들이 조율하는 그 불협화음의 향연, 그 음에 가까운 것 같아요. 그 음이 어떤 화음으로 접어 들어가는 상황을 그리고 싶었어요. 사실 그게 우리 삶이거든요. 모두 자신 안의 불협 속에서 어떤 조화를 찾아내고 싶어 하며 살잖아요. 프로스트의 여정도 그것과 비슷하다고 봐요.


특정한 악기가 떠오르지는 않네요. 물론 만화 속에서 첼로를 연주하는 모습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건 그냥 멋있어 보여서 그린 거고요. (웃음) 이 만화는, 아마도 불협으로 가득한, 공연이 시작하기 전 음을 튜닝하는 짧을 순간을 5년 동안 그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반대로 천상원 교수라는 캐릭터는 어떤 사람을 모티브로 한 건지 굉장히 궁금했어요. 어떻게 보면 닥터 프로스트의 대척점에 있는, 이상적인 심리학 교수에 가까운 인물이었으니까요. 본인이 겪으셨던 인물을 모티브로 한 것이었나요?

- 그런 건 아니고요. 제가 생각했던 멘토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 그런 멘토를 가지고 있었던 적은 없었어요. (웃음)

시즌1,2,3 전체를 통틀어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있었어요. 각 에피소드마다 특정 정신 문제가 다뤄지는데 특별히 선정하는 기준이 있으신가요?

- 공황 장애, 성격 장애, 과민성 대장 증후군 같이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정신 문제들을 위주로 했어요. 독자 분들이 ‘내가 이랬어.’라거나 ‘친구가 이런 애가 있어.’라고 느끼게 하고 싶었고, 그래서 기억 상실이나 사이코패스 같은 소재는 가능한 한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최근에 공황 장애나 성격 장애 같은 것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점점 더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요. 작가님은 이런 정신적인 문제들이 사회에 더 많아지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제가 전문가가 아니니까 원인까지 분석하기는 어려운데요. 웹툰 작가들 중에 공황 장애 환자가 급속히 늘고 있는 걸 보면, 무한정 밀어붙이는 그 스트레스와 압박에 지나치게 오래 노출되고 있는 상황이 많아진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어요. 끈 떨어진 연처럼, 예전 사람들이 느끼는 안정적인 기반, 땅을 밟고 있다는 심리적인 안정감이 많이 사라진 것 같아요. 그런 느낌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 노마드가 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유민이 되는 거잖아요.

이런 전문적인 문제들을 다루다 보면 자문을 많이 구하셔야 하잖아요. 자문을 구하는 것도 일이실 것 같아요. 특히 웹툰 안에 극적인 요소와 정확한 정보를 적절히 녹여내는 작업이 굉장히 어려울 것 같은데 어떠세요?

- 시즌1, 2 때 가장 힘들었던 게 그런 거였어요. 엄밀한 정보를 담아내는 것에 어디까지 치중해야 하는 걸까 고민했죠. 저는 심리학에 대해서 오해를 가진 사람에게 제대로 된 심리학을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처음에 제대로 된 걸 알려주면 오해를 가진 사람들이 안 오잖아요.(웃음) 애초에 제가 제 작품을 보여주고 싶었던 사람들은 심리학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어요. 심리학에 대해서 1, 2, 3화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을 붙잡고 싶었던 거죠. 그 사람들을 불러다가 ‘심리학은 그런 거 아니고, 5화 이후에 나오는 그런 이야기들이야.’ 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예요.

실제로도 전문적인 소재를 녹여내는 게 굉장히 어려워요. 그래서 전문 자문들을 만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어요. 하지만 제일 중요한 우선순위를 놓치지 않는 게 참 중요했던 것 같아요. ‘이걸 쓰는 이유가 무엇이냐, 정보 전달이 목적이었냐? 아니다.’라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했어요.


[사진 촬영 및 제공 = 오픈북]

#. 웹툰 : 그곳의 이야기

처음에 웹툰은 어떻게 시작하시게 되셨나요?

- 만화가를 오래 꿈꿨는데 만화는 죽고 웹툰은 살아서 웹툰 작가를 하게 됐어요. 연극 무대를 오래 준비하던 사람이 연극이 죽고 영화가 뜨니까 영화에 출연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다수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는 매체가 대중 매체라고 한다면, 대중 매체 중에 유일하게 돈 없이 시작할 수 있는 게 만화였어요. 물론 소설이 있긴 하지만 그건 그림이 없으니까 제 선택지는 아니었고요. 그 이외의 대중 매체는 그 무엇이 되었건 최소한의 돈이 필요하고 혼자서 못해요. 그래서 한 것 같아요.

돈 없이도 시작할 수 있고 다수에게 작품을 보여줄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다는 게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웹툰의 매력이기도 한가요?

- 웹툰 작가의 기본적인 매력 중에 하나는 불특정 다수에게 광역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어떤 메신저로서 웹툰을 다룰 수 있다는 거죠. 그리고 저는 웹툰이라는 게 굉장히 강력한 매체로 발명된 것 같아요. 만화의 연장선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매체였어요. 그런 강력한 매체를 굳이 다루지 않을 이유는 없죠.

과거 ‘워니’나 ‘정글고’ 시절의 웹툰 때와 비교해보면 웹툰 시장이 정말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웹툰이 아주 급속도로 성장한 거라 볼 수 있는데요. 이런 빠른 성장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 굉장히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일단은 스마트 폰 덕분인 것도 있고요. 이미지 전송 속도가 엄청나게 빠른 한국이라는 특수한 상황도 있었고 초창기 시장을 선도했던 몇몇 포털의 역할도 컸겠죠. 무엇보다 중요했던 건 선구적인 작가들이었어요.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았으니까요. 다른 대중 매체와 다르게 엄청나게 다양한 소재들이 있었죠. 그런 것들이 한 번에 이루어진 게 아닐까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웹툰 한 화를 그리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나요?

- 웹툰 작가들은 연재 중에 거의 매일매일 그린다고 봐요. 심할 때는 하루에 20시간씩 그리는 경우도 있어요. 몇 달 동안 주 7일 작업하고 연재 끝나면 쓰러지고요. 사실 이게 작가를 굉장히 소비시키는 방법이라서 탈피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요. 팀을 짜서 화실도 돌려보고, 고료가 좀 올라가면 어시스트를 고용해보고요. 업계의 시스템이 작가가 재충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물론 최근에는 많이 나아진 편이에요.

얼마 전에 웹툰 <패션왕>의 작가 기안 84님이 모 방송 프로그램에 나오시고 작가들의 일상생활이 대중들에게 조금 공개되었어요. 웹툰 작가로 사는 데에 있어 힘든 부분들을 사람들이 알게 되었는데요. 그 부분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어요. 사람들이 쉽게 보지 못하지만 웹툰 작가들이 다 공유하는 직업 병이 있나요?

- 디스크, 거북목, 어깨 손목 터널 증후군은 거의 다 있고요. 공황장애가 부쩍 증가한 것 같아요. 우울증을 가지신 분들도 있고요. 전 디스크가 있고요. 직업병으로 여겨질 만한 건 이런 것들이 있을 것 같아요.


만화가 인기 있을 때는 만화 그 자체만 소비되었는데 웹툰은 웹툰 작가를 소비하는 성향이 조금 커졌어요. 종합적으로 웹툰 작가가 할 수 있는 게 늘어난 반면, 안 좋은 점이 있다면 작품 외적인 부분에서 많은 터치가 들어온다는 것이에요. 작가에게 지나친 간섭이 들어오고, 작가들을 공인의 범주로 묶어서 특정 도덕률을 폭력적으로 요구하는 독자들도 있고요. 생활툰 같은 경우에는 만화 내용과 작가의 일상이 겹쳐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일상의 피해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어요.

사실 일상툰만 보는 사람들은 ‘그 짧은 걸 그리는 게 그렇게 어렵냐?’라는 말을 종종 하잖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아요.

- 모르는 분들은 모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그것에 대해서 딱히 불만이 있지는 않아요. 그 사람들의 일기장을 연재하라고 시켜보면 바로 감이 올 텐데 그렇게 안 하니까 모르죠. 일상툰 작가들이 얼마나 대단한데요.

작가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작가 생활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하는 지망생들이 많아요. 실제로 웹툰 작가를 하게 되면 대략적인 고료가 어느 정도 되나요? 생계를 충당할 수 있는 수준인가요?

- 어떤 직업의 샐러리를 볼 때는 세 가지를 봐야 한다고 봐요. 그 직업을 처음 진입했을 때 최초로 받는 월급, 그 직업 업계의 탑이 받는 업계 최고 월급, 그 중간의 평균 직업인들의 월급. 업계 최초의 진입 월급은 그 업계가 얼마나 건강한지를 말해주는 지표라고 생각해요. 최초의 월급이 턱없이 낮아서 생계가 안 되는 경우에는 병든 시스템이라는 거죠. 그 업계의 최고 월급은 그 업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에요. 예를 들어서 웹툰 업계에서 업계 최고 탑이 받는 고료는 월 2~3억 정도 돼요.

얼핏 들어보면 많은 액수 같네요.

- 많은 액수 같지만 업계 ‘최고’가 2~3억을 받는다면 사실 그렇게 많은 게 아니에요. 우리 나라 최고의 CEO는 얼마나 벌까요? 우리나라 최고의 쉐프는 얼마나 벌까요? 그 기준을 두고 생각하면 웹툰 작가라는 직업의 위상이 아직 그렇게 높지 않다고 볼 수 있죠.


과거에는 업계 진입고료가 월 40만원에서 80만원 정도였어요. 지금은 많은 포털 사이트가 월 140~200 정도로 맞추려고 하고 있고요. 상당히 괜찮은 수준이고 업계가 병들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월등히 높은 금액은 아니지만 막 작가 생활을 시작하는 20대가 받는다고 생각했을 때는 적당한 금액이라고 생각해요. 5~10년 사이까지 꾸준히 차기작을 내고 (물론 포탈마다 재계약 기준이 다르지만) 계속해서 고료를 갱신해나간다면 그 때 쯤에는 200~300 정도 받게 되는 것 같아요. 거기서 유료 수익, 배너 광고 수익, 단행본 인쇄, 그 외 행사들을 통한 2차 수익, 판권 판매 등이 더해진다면, 업계에 진입한 이후에는 생계 문제가 그렇게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고 봐요. 시장은 많이 커졌어요.

웹툰 산업이 커지면서 웹툰이나 만화와 관련된 학과들이 많이 생겼어요. 어떤 학생들은 이런 곳을 가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고민을 많이 해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이야기를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코스 웍(Course work)을 밟는 장단점은 명확히 갈린다고 생각해요. 전공을 해서 학위를 받아야만 하는 직업이 아니기에 더더욱 그렇고요. 전공을 하게 되면 관련 전공, 네트워크, 체계적인 학습, 이런 데서 오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어떻게 그릴까.'를 넘어서는 ‘무엇을 그릴까.’에 대한 부분을 혼자서 공부해야 하는 단점이 있어요. 반면 인문학 같은 공부를 하게 되면 ‘어떻게 그릴까.’는 조금 천천히 늘 수는 있지만 ‘무엇을 그릴 것이고 왜 그릴 것인가.’를 고민할 충분한 시간을 벌 수 있어요. 그런 장단점이 있죠.


스스로 고민을 많이 하는 사람이고 책도 많이 보고 고민이 몸에 붙어 있는 사람이라면 어차피 전공을 해도 그런 걸 할 것이니까 전공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근데 이 사람이 책을 많이 보고 인문학적인 공부를 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문과쪽 계열을 전공하면서 그림을 혼자 공부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자신의 기질에 따라 다른 거니까 내가 어떤 기질인지 아는 게 먼저겠죠. 모든 사람한테 전공이 낫다 비전공이 낫다 말하는 건 진짜 말도 안 되는 거고요.

현역 웹툰 작가로서 웹툰 작가 지망생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 조언할 게 있나요. 제 코가 석자인데요. (웃음) 건투를 빈다, 우리 존재 파이팅. '같이 좀 살자. 나도 죽겠다.' 이런 거죠. (웃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어떤 직업을 갖게 될 사람은 이미 그걸 하고 있다고요. 만화가가 될 사람은 이미 어딘가에서 만화를 그리고 있어요. 그게 프로가 아닐 뿐, 지면이 여기가 아닐 뿐이죠. 지금 설정만 하고 있고 공부만 하고 있다면 일단 만화를 그리라고 하고 싶어요. 당연히 별 볼 일 없는 작품이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되게 중요한 단계라고 봐요. 자신의 아쉬운 결과물을 보는 게 무서워서 못 그리는 사람이 가장 늦게 데뷔하고 만화가가 못 된다고 봐요.

그리고 만화를 그릴 때 그 목적은 완결이었으면 좋겠어요. 경험치는 시작할 때 안 나오고 끝낼 때 나오잖아요. 완결하지 못한 10개의 작품이 있는 사람보다 아쉬운 완결을 낸 작품 1개가 있는 사람이 더 많이 배우고 느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렇게 한 걸 반드시 남에게 보여줘야겠죠. 웹툰 작가는 대중작가잖아요. 뭔가를 보여주는 게 일이고 욕 먹는 게 직업의 일부예요. 모두에게 사랑 받는 게 목적이 아니라면 어딘가에 올려서 보여줘야 할 것 같아요.

일단 그리고, 완결하고, 보여주세요.


[사진 촬영 및 제공 = 오픈북]


#.


‘안 해본 건 해본다.’라는 그의 철칙 때문일까. 이종범 작가는 정말 다양한 수식어와 함께한다. 그는 웹툰 작가이지만, 학부생 때는 심리학을 전공한 심리학 전공자였다. 현재는 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고, 쉬는 날에는 친구들과 거리에 나가 음악을 하는 음악인이기도 하다. 라디오 게스트로 나와 입담을 과시하기도 하고, 최근에는 더 지니어스에 출연해 문철마삼이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기도 했었다.


‘이종범은 어떤 사람이냐.’는 필자의 질문에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난색을 표했다. 결국 그가 내놓은 대답은 한마디로 ‘잘 모르겠다.’였다. 그는 자기 자신도 스스로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어떤 의미로는 답을 하지 못한 것이지만, 오히려 필자에게는 그것이야말로 꽤 적절한 대답이었다. ‘우리 삶이란 곧 자신을 알아가는 여정이다.’라고 이야기를 한 그였기에 그 대답이 더 일관성 있게 들렸다.

이종범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 (웃음) (웃음)

죄송합니다. 어려운 질문이죠. (웃음)

- (웃음) 너무 많은 종류의 정의를 내릴 수 있을 텐데,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도대체 뭘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할까요? 저는 그게 작가가 가질 수 있는 좋은 포지션이라고 봐요. 요즘 그런 생각을 해요. ‘나는 뭐 하는 사람일까?’라고요.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이야기를 만들기도 하고, 쉬는 시간에 뭔가 만드는 것도 좋아하고. 음악도 하고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의 정체성에 제일 가까운 것 같고 그게 제 핵심적인 정체성이긴 하지만 여전히 제가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을 때가 많아요.

어릴 때는 주변의 칭찬이 좋아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게 되셨다고 알고 있어요. 지금은 어떤가요? 지금의 작가님에게 있어 만화/웹툰은 무엇인가요?

- 저는 개인적으로 이 나라나 혹은 별 자체가 행복하게 살기에 친화적인 환경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자식이 태어난다면 권해주고 싶지 않은 세상이라고 생각해요. 저 스스로에게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그런 측면에서 저는 세상이 바뀌기를 원해요. 근데 세상이 바뀌려면 사람들이 바뀌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쉽게 안 바뀌잖아요.


근데 어떤 사람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걸 목격한 적이 있는데요. 그건 대부분 어떤 잘 만들어진 이야기에서 깊은 감동을 느낄 때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바뀐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 거창하게 들리면서도 소소한 바람이 있다면 세상이 바뀌는 걸 바라기 때문에 인간을 바꿀 수 있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쓰는 게 꿈이에요. 만화와 웹툰은 그걸 전달하는 하나의 도구이고요. 제 만화를 보기 전과 후에 어떤 독자의 삶이 조금이라도 바뀌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고요, 그것이 조금 더 바람직하거나 행복한 방향이었으면 좋겠어요.

대학 학부 시절 심리학과를 전공하셨어요. ‘만화에 그리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심리학과에 갔다.’고 알고 있는데요. 실제로 심리학을 전공한 것이 만화를 그리는 데에 도움이 되고 있나요? 단순히 닥터 프로스트뿐만 아니라 이전의 작품들을 통틀어서요.

- (심리학을 공부했던 바탕이) 매 작품을 할 때마다 어디서부터 공부를 해야 할지 알려주는 지표를 제공해줘요. 전문적인 도움이 된다는 것보다는 이정표 역할을 많이 해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해주고요. 작가라는 직업에 걸맞는 부분이 있어요. 다만 작가가 되기 위해 심리학을 한다는 말은 약간 순서가 바뀐 거라고 봐요. 내가 공부한 게 심리학, 철학이었다면, 또는 인류학이었다면, 그걸 이용해서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굉장히 다양한 활동을 하셨던 걸로 알고 있어요. 라디오 게스트로 출연도 하시고,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계시고 많은 대중들에게는 더 지니어스에 출연자로 알려져 있어요. 더 지니어스에서 문철마삼이라는 별명을 얻으셨고요. (웃음)

- 영광스러운 별명이죠. (웃음)

어떻게 섭외가 된 건가요?

- 글쎄요. 섭외가 왜 왔는지는 모르겠어요. 심리학 만화를 그려서 온 건가 싶기는 한데, 그냥 섭외가 왔는데요. 작가에게 있어 그럴 기회가 어디 있겠어요. 잘 짜여진 게임을 아주 선명한 캐릭터의 사람들과 함께 플레이해본다는 경험은, 아까 말했듯 안 해본 건 해보는 저에게도 아주 좋은 기회였죠. 그래서 하게 됐어요. 많은 공부가 되었죠.

‘안 해본 건 해본다.’는 말을 오늘 여러 번 듣는 것 같아요. 참 인상 깊은 말이네요.

- 안 해본 걸 해보는 건 중요하니까요. 작가로서 계속 양분을 주려면 필요한 부분이죠.

웹툰 작가로서의 지침이신가요. 본인 인생 전체의 지침이신가요?

- 인생 전체에서의 이야기인 것 같아요. 안 만나본 사람 만나보고 안 해본 걸 해 보고. 에너지가 부족하면 잠깐 안 하더라도 어딘가에서 감동 받고 에너지가 채워지면 다시 도전해보고 싶고. 제가 그런 기질이지 않나 싶네요. (웃음)

본인의 작가 삶에 만족하시는 편인가요?

- 일단 모든 인생이 그렇듯, 어느 정도의 불만족과 어느 정도의 충실감을 같이 느끼고 있어요. 산을 올라가다 보면, 정상이 아닌 중턱에서도 그 경치를 만끽할 수는 있는 거잖아요. 정상이 저쪽에 있다는 것만 있지 않는다면요. 그런 불만족과 만족감을 같이 가지고 있지 않나 싶네요.




어느새 2016년 4월이 되었어요. 남은 2016년을 위한 계획이 있으신가요? 그리고 평생에 걸쳐서 본인이 가장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요?

- 일단 정상인의 몸으로 돌아오는 거예요. 그래서 운동해야 하고요. 정상 체력을 만들어야지 17년에 다시 연재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교수라는 직업에 적응하는 것도 목표고요. 새롭게 배우고 싶은 것도 몇 개 있어요.

평생에 이루고 싶은 꿈은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지구 단위의, 행성 단위의 독자를 상대하는 이야기꾼이 되고 싶어요. 분명 어떤 작가들은 지구라는 단위로 움직이고 있어요. 문화와 국적을 떠나 인간 종족을 상대로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은 어떤 나라의 어떤 시대에 사는 사람들을 상대로 이야기를 쓰는 게 아니라 인간 종족을 상대로 이야기를 쓰죠. 그만큼 강력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멋진 꿈이네요.

- 멋진 꿈이고, 이루지 못할 수도 있지만, 꿈은 꿈이니까요. (웃음)




-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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